본문 바로가기

STB스페셜_특별강좌

STB 상생방송 증산도 이덕일 소장 식민사학의 실체를 밝힌다 한국사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근대를 말하다 - 식민사관 해체론 



해방 67돌이 되는 오늘까지 일제 식민사관이 한국 국사학계 주류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국사 교과서의 '일왕'을 '천황'으로 고치고,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고치라고 명령한 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후예들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사 관련 국가기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동북공정에 발맞춰서 한사군이 한강 북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도 마찬가지 행태를 반복해왔습니다.


그간 이런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공개강연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에서는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이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사 관련 기구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할 때임을 말합니다. 

▲ 이덕일 소장


이덕일 박사의 강의와 명사들의 생생한 증언은 주류사학의 병폐를 바로 인식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는 계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 <천도교 수운회관 대강당>

  
오늘은 대단히 뜻깊은 날입니다. 오늘이 몇일이죠? 2012년 11월 15일 오늘이 무슨 날이냐? 102년 전에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67년 전에 해방이 됐죠. 그러나 우리의 역사관은 102년 전부터 그 다음에 67년 전부터 계속 일제 식민사관이 지배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주체적인 사관에 대해서 테러에 가까운 공격을 해왔습니다. 

▲ 이덕일 소장, 식민사관은 해방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강연 장면


일제 식민사관과 조금만 다른 이야기를 하면 재야다, 정신병자다, 뭐다, 백날동안 그렇게 공격을 해왔습니다. 공격을 계속 받아왔습니다. 오늘 비로소 이제는 더 이상 식민사학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그런 선언을 하는 날입니다. (박수)  

지금 이 자리에는 무수히 많은 선열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중에서도 세분의 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석주 이상용, 단재 신채호, 특히 이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해에서 쓸쓸히 돌아가신 백암 박은식 선생, 만주에서 돌아가신 석주 이상용 선생, 여순 감옥에서 돌아가신 단재 신채호 선생, 이분들에 대한 공격이 해방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자리는 그러나 제가 목소리만 높이는 자리가 아니라 그러한 공격이 과연 합당한가. 역사학의 가장 기초적인 일반 원칙에 비춰봤을 때도 과연 합당한가. 그것을 갖다가 여러분과 함께 검증해보고자 하는 그런 자리입니다.

▲ 이덕일 소장, 식민사관은 해방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강연 장면



그래서 오늘 제가 마련한 강의 제목이 식민사관은 해방 후 어떻게 주류 사학이 되었나. 이 강의를 준비하는 중에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니 이런 제목으로도 강연회가 되느냐. 이런 제목으로 강연회가 된다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우리가 67년 동안 해방 이후에도 얼마나 역사 테러를 당해왔는지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102년 전에 나라가 망할 때 온 백성들이 울고 불고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물론 많은 백성들이 울고불고 하고 목숨을 끊고 망명하고 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부부동반으로 이렇게 일본에 가가지고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후예들이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 많은 부분들, 그리고 특히 역사학계의 주류를 장악해가지고 우리 국민들의 역사관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1909년, 1908년, 9년, 이 무렵에 가면은 친일파들의 행위가 어느 정도까지에 이르게 되냐면 나라 팔아먹는 경쟁을 서로 치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당시에 저 일진회라고 불렸던 친일세력, 이들과 그 다음에 노론의 마지막 당수, 이 노론이라는 당파, 인조반정 이래로 250년을 집권한 이 당파, 일진회와 노론, 양쪽에서 나라 팔아먹는 경쟁에 나서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에 일본에는 정치 주류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토 히로부미 중심의 문관 온건파가 있고, 또 하나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중심의 무관 강경파가 있습니다. 두 파의 차이는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당장 조선을 점령하자. 대한제국을 점령하자라는 것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점령은 하되 조금 국제 여론도 신경을 써가면서 점령을 하자라는 차이일 뿐이죠. 

그러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강경파와 바로 조선을 점령하자 라는 걸 합의하고 그 다음에 석달 이후에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에서 총맞아 죽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일본 통감부로 부임하는 인물이 데라우치 마사타케입니다. 초대 조선총독이기도 하죠. 이 데라우치는 야마가타 계열의 육군대장입니다. 조선을 대한제국을 바로 점령하자라는 세력이죠.

그렇게 되니까 이완용이 대단히 급해졌습니다. 왜냐. 이 야마가타 아리토모 계열의 데라우치가 일진회와 손을 잡고 나라를 먹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불안감이 든 이완용이 자기 비서인 이인직을 시켜가지고 통감부 외사국장인 고마쓰와 나라 팔아먹는 비밀협상을 몰래 주도하게 됩니다. 이 비밀협상에서 이인직이 이완용이이 가장 알고 싶은게 뭐냐. 뭐겠습니까? 우리가 나라를 넘기면 우리에겐 뭘 줄거냐. 그러니까 통감부 외사국장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통감부 외사국장이 외교부 장관입니다. 고마쓰가 하는 말이 나라를 넘기면 조선 귀족령을 만들어서 너희들은 조선의 귀족으로 봉해주고 그리고 따로 특별 예산을 편성해서 막대한 돈도 주겠다. 그랬더니 이인직이 그렇게 관대한 조건이라면 하등의 어려울 것이 없겠습니다. 그렇게 관대한 조건이라면 하등의 어려울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간 뒤에 일사천리로 나라를 일본에게 팔아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우리가 왜 하냐. 모든 역사는 현대사입니다. 이렇게 나라는 일본에게 넘어갔는데 우리가 지금 이인직 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혈의 누가 생각나죠? 지금 대한민국 교과서에서 이인직을 뭐라고 가르칩니까? 혈의 누를 쓴 선각자, 이렇게 가르치고 있죠? 그러면 이인직이 비밀협상을 주도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몰랐다. 상대방인 고마쓰가 1935년에 총독부 기간지인 경성일보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번 웃으셔도 괜찮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데라우치 백작의 외교수완, 해가지고 연재로 한 내용이예요. 

▲ 이덕일 소장, 식민사관은 해방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강연 장면


이렇게 나라 팔아먹는 비밀협상을 한 매국노를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어 교과서 국사 교과서는 선각자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쓰고 있느냐. 혈의 누 선각자,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혈의 누의 내용은 안가르칩니다. 왜 안가르치는지 아세요? 혈의 누의 내용이 뭐냐? 청일전쟁 때 청나라 군사에게 겁탈당할 뻔한 조선 처녀를 일본군이 구해줬다. 그 내용입니다. 이게 21세기 백주대낮에 대한민국 학생들이 선각자로 알아야 하는 이인직, 이것의 실체죠. 

일본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2년 전 나라를 점령하고 10월 7일날 약속대로 76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에게 작위를 주고 귀족의 작위를 주고 훈장을 줍니다. 그 중에 왕족들이 있고 당파로 알 수 있는 사람이 64명쯤 되는데 조선의 사색당파로 분류를 해보면 남인들은 한명도 없고 북인은 두명이고 소론은 여섯명이고 나머지 56명이 전부 다 노론입니다. 250년 동안 인조반정 이래로 집권했던 당파가 조직적으로 나라 팔아먹는데 가담을 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이들이 일제시대 때 계속 세력을 온전하고 1930년대에 조선의 3대 부자가 있습니다. 한명은 누구냐? 일제로부터 자작은 받은 민영휘, 또 두 명은 조선의 최고 현금왕 고휘경이라는 일제로부터 백작의 자작을 받은 인물. 그 다음에 또 한 인물은 이완용의 둘째 아들 이항구, 이들이 1930년대에 조선의 최고 부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당파를 조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느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 이 당시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낸 책이 많아요. 조선귀족열전, 조선신사대동보, 일본으로부터 작위받은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왜냐? 이 체제가 그 체제가 천년 만년 백년 갈 걸로 생각을 한겁니다. 청일 전쟁으로 청나라 꺾었습니다. 러일 전쟁으로 러시아 꺾었어요. 그 다음에 미국과는 카스라테프트 조약을 맺어서 필리핀을 미국이 차지하는 대가로 대한제국은 일본이 차지한다. 합의했습니다. 영일동맹을 맺었어요 일본에. 

그래서 이 시점에서는 우리나라가 독립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능성이 없을 때 이들이 일제로부터 작위와 돈을 받고 희희낙락 할 때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분들을 우리가 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박수)


식민사관은해방후 어떻게 주류사학이 되었나

 

그런데 역사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논의를 좁히면은 오늘의 주제에 따라서 좁히면은 일제 식민사관이 대부분, 일제식민사관의 논리구조가 여기에서 보이시는 대로 일제식민사관이 주로 고대사에 집중돼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중국 동북공정이 일제식민사관의 복사판인데 마찬가지로 고대사에 집중돼 있죠. 그런데 일제 식민사관이 만든 고대사 논리가 뭐냐? 한사군은 한강 북부에 있었다.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 북부도 식민지로 시작했고 한반도 남부도 식민지였기 때문에 결론은 뭡니까? 식민지는 너희 나라의 운명이다. 고로 독립운동 하지마. 이것이 일제식민사관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1911년 나라 망했을 때 석주 이상용 선생이 안동에서부터 만주의 유화현 항도촌으로 망명을 하면서 망명일기를 씁니다. 서사록이란 망명일기를 쓰는데 이 망명일기에 마치 일제식민사관이 그렇게 나올거를 알았다는 듯이 한사군은 만주에 있었다. 이렇게 써놓습니다. 

마찬가지로 단재 신채호 선생도 한사군은 만주에 있었다. 이렇게 써놓죠. 그러면 이분들이 예언자였기 때문에 그런가. 반면에 일제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 이나바 이와기치, 이병도, 이 사람들은 시종일관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는 임나일본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역사는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식민지,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식민지였다 라고 일관되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이 나오기도 이전에 석주 이상용 선생은 이미 일제식민사학이 등장하리라는 것을 마치 예언이라도 한거처럼 한사군은 만주에 있었다라고 서사록이나 망명일기에 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분 중에서 초등학교 때 한사군에 대해서 배운 분이 계실 겁니다. 계시죠? 한사군 하면 시험문제 두 개 나옵니다. 하나는 뭐냐? 다음중 한사군이 아닌 것은? 하고 나오죠? 그러면 낙랑, 임둔, 진번, 현부, 그 중에 하나 빼고 부여나 동예 집어넣으면 딱 맞춰야 되죠? 또 하나는 다음 중 한사군의 중심지인 낙랑군의 위치는 어디냐? 이렇게 나오죠? 그러면 뭐라고 해야 됩니까? 평양, 이렇게 써놔야 되죠? 

그런데 우리가 만일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먼저 쳐봅시다. 그러면 역사적 그것이 확고부동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 역사는 식민지로 시작했다 하는 이야기죠? 그러면 해방된 나라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려면 먼저 뭘 가르쳐야 됩니까? 이순신 장군을 가르치고 을지문덕을 가르치고 세종대왕 가르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죠. 그런데 우리 역사는 식민지로 시작했다. 이거부터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쳤습니다. 이인직을 갖다가 선각자로 가르친 그 논리구조, 그 속에서 한사군을 갖다가 어릴 때부터 초등학생 때부터 주입식으로 가르쳐왔던 것이죠. 

그럼 이 시점에서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를 우리가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데 독립운동가들이 왜 한사군은 일관되게 만주에 있었다라고 주장했는가. 여기에서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한서 설전 열전에 보면은 서고왈, 낙랑속유주, 낙랑은 유주에 속해 있다. 요즘 말로 하면은 유주도 낙랑군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상급행정관청의 유주가 어디냐? 북경입니다. 상급행정관청은 북경이고 그 하급군은 평양이고 공문서 한 장 전달하다 해가 넘어가요. 가능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후한서 광무제 본기에 보면은 낙랑군은 옛날 조선국이다. 재요동, 요동에 있다. 그 다음에 후한서 최인 열전, 장자면은 속낙랑군, 낙랑군에 속해 있다. 기지재요동, 그 땅은 요동에 있다. 시종일관, 제가 일부만 뽑아왔습니다만 시종일관 중국의 고대사서는 한사군은, 낙랑군은 만주에 있다. 라고 시종일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럼 황해도가 평안남도가 언제부터 요동이 됐습니까? 황해도와 평안남도가 요동이면은 최영, 이성계, 정도전, 다 정신병자죠? 거기가 요동인데 무슨 요동 수복하겠다고 위화도까지 갑니까. 

그런데 제가 일제 식민사학자들, 그래서 단 한번도 이것을 인용한 글을 본적이 없습니다. 불리한 거는 일체 인용을 안하죠. 그런데 이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획정하기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구절이 사기 하본기 태강지류지에 나오는 제일 아랫귀절입니다. 낙랑군에는 수성현이 있고, 첫째 수성현이 있고 두 번째 갈석산이 있고 세 번째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이렇게 기록돼 있죠? 그래서 요 세가지 정보를 만족시키는 곳, 낙랑군에는 수성현이 있고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요 세가지 정보를 만족시키는 지역을 찾으면 그곳이 낙랑군 지역이고 그 주변 일대가 나머지 한사군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지역을 갖다가 지금 주류 식민사학계는 황해도 수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가 뭐냐? 저 이병도 박사라는 분이 낙랑군고라는 세칭 저는 이게 논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주류사학계에서 바이블처럼 성서처럼 떠받드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수성현, 낙랑군 수성현,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낙랑군 수성현이 황해도 수안이란 이야기죠. 그런데 그 다음에 수안에는 승람산천 쪽에 요동산이라는 산명이 보이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시죠? 승람, 동국여지승람이란 책에 황해도 수안군 조에 보니까 요동산이라는 산이 나온다. 그게 갈석산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갈석산은 갈석산이고 요동산은 요동산이죠? 

그 다음에 관방조에 동국여지승람 황해도 수안군 관방 방어수세를 적어놓은 관방조에 후대 소촉의 성이지만 방원진의 동서행성의 석성이고 이 방원진 석성이 만리장성 아니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중국 만리장성 가보시면 뭘로 만들었습니까? 벽돌로 만들었죠? 우리나라 성들은 뭘로 만듭니까? 자연석으로, 돌로 만든 석성이죠? 저희가 이번에 지난 7월달에 내몽골에 갔더니 내몽골 적봉에 중국 사람들도 지금으로부터 4천년 전에 쌓은 석성이다. 단군 조선의 석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석성이 있습니다. 올라가봤습니다. 지금의 고구려, 백제성하고 똑같습니다. 석성이라는 자체는 벌써 우리 민족의 성이지, 중국의 성이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또 진지의 수성현 뒤에는 맹랑한 설이지만 진대장성기효기라는 기재도 있다. 이건 한마디로 문장 자체가 아니예요. 비문이예요. 왜냐면 이병도씨의 사전 전제가 자기는 낙랑군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라고 그랬죠? 그러다 논리로 전개하다가 논리가 부족하니까 진지, 진지는 뭐냐면은 중국 고대진서 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조에 보면은 진대장성기소기, 진나라 때 장성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라고 쓴 이 구절은 그야말로 낙랑군 수성현, 만주에 있는 낙랑군 수성현을 말한 것이지, 황해도 수안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논리가 부족하니까 아무거나 뒤죽박죽 섞어놓은 이야기죠?   

그 다음에 이 진장성설은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논문에다가 터무니없는 말이면 쓰지 말아야죠? 

아마 당시에도 요동산이란 명칭과 어떠한 장성기가 있어서 그러한 부회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릇된 기사에도 어떠한 꼬투리가 있는 까닭이다. 이 말도 안되는 허접쓰레기 같은 문장이 오늘날까지도 한국 주류 식민사학계에서 성서로 떠받드는, 그래서 만리장성을 동쪽 끝으로 끌어들이는 바로 그러한 바이블 같은 문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병도씨의 모든 논리가 그렇듯이 이것도 자기가 만든게 아니어요. 이 문장은 원래 이나바 이와기치라는 이병도의 스승이 진장성 낙랑군 수성현 및 진장성 동단에 관한 고라는 이것도 논문인지 아닌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에다가 뭐라고 써놨냐면 수성, 진나라의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지금 조선 황해도 수안의 경계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써놓은걸 갖다 무비판적으로 이병도씨가 추종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을 현재의 주류 식민사학계가 성서처럼 떠받들다 보니까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데 너무 신이 난겁니다. 

그래서 중국 동북공정이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하다가 한국 주류 식민사학계가 자기네 학설에 동조를 하니까 너무 신나서 몰아붙이고 있는데 그런데 이 지도가 바로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중국 사학계의 공식 역사 지도집입니다. 이 지도집을 보면은 저 만리장성이 한반도 안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죠? 이 수성이 여기에 보이고 있죠? 그리고 만리장성을 한반도 깊숙이 끌어들였습니다. 이게 중국 사회 과학원에서 만든 중국의 공식지도집이예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그런데 이 지도에 보면은 중국 동북공정을 말해주는 이 지도에 보면은 낙랑군 수성현을 한반도 내로 끌어들였죠. 만리장성을 끌어들였죠. 그럼 뭐가 빠졌습니까? 갈석산이 빠졌죠? 갈석산은 바로 여기에다가 중국 하북성에다 그려놨어요. 우리만 제대로 서 있으면은 이 한가지 이 지도 한 장으로 중국 동북공정의 모든 논리는 무너진 겁니다. 우리만 바로 서 있으면요.

그러면 중국 사람들이 왜 수성현을 한반도로 끌어들이고 만리장성을 끌어들였는데 갈석산은 못끌어들였을까? 왜? 갈석산은 너무너무 유명한 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설악산, 금강산, 지리산, 이런 산이예요. 우리가 역사왜곡한다고 고대 지명은 딴데 비정해놔

도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없지만 설악산을 갖다가 더 대만에다가 그려놓은면 보통 사람들도 어, 설악산이 왜 대만에 있지?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중국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그 갈석산은 한반도 내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하북성에다가 그려놓은 겁니다. 이게 갈석산의 중국에서는 진시황을 비롯해서 아홉명의 황제가 올라갔다 그래가지고 구등황제산이라고 불리우는 대단히 유명한 산인데 최초로 오른 황제가 진시황, 두 번째가 그 아들 2세 황제 후혜, 세 번째가 고조선의 침략한 한무제, 네 번째가 고구려와 여러 차례 싸웠던 삼국지의 위나라 조조, 그 다음이 수나라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양제, 그 다음이 고구려를 침공한 당태종. 그래서 한나라때 사람이 회남자에 보면은 이 한나라 때 사람이니까 정확하게 한사군이 있었던 시대의 지리인식을 반영하는 회남자 십초군에 뭐라고 나오냐면은 동방의 끝 갈석산을 지나면 조선이다. 갈석산을 지나면 바로 고조선이다. 이렇게 중국의 고대사료들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
 
그리고 이 갈석산 주변에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갈석산이 있는 곳이 지금의 하북성 창여현인데 중국 수서에 보면은 하북성 창여현은 옛날에 수성현이다. 낙랑군 수성현이다. 이렇게 기록이 돼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린 낙랑현에는 수성현이 있고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라고 말한 것이 지금의 중국의 하북성에 있는 창여, 그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이 역사관으로 바로 서면은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의 ‘ㄷ’자도 못꺼내게 돼 있습니다. 왜냐? (박수) 중국의 하북성까지가 고조선 강역이었다. 우리 역사 강역이었다 이렇게 되는 거죠? 우리가 먼저 시작하지도 않았다. 니네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주장하는건 다 니네 고대사료에 나와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의 ‘ㄷ'도 꺼내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맞죠 여러분? 

그런데 국민세금을 연간 200억, 250억원을 지원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자기네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린게 위만 조선은 고조선은 그 왕성인 왕검성이 현재의 평양시 대동강 북안에 있었는데, 라고 해가지고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를 한사군이 바로 평양에 있었다라고 21세기, 지금 여러분이 낸 세금을 가지고 버젓이 중국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저런 주장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민사학은 무너진게 아니라 해방 후에 더 강고하게 버젓이 여러분이 낸 세금을 가지고 중국에 역사 침략야욕에 그대로 동조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또 하나의 일제 식민사관, 한반도 남부에는 임라 일본부가 있었다. 여기에서 나온게 뭐냐면은 소위 말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이 이론은 왜 나오냐? 쓰다 소키치라는 이병도의 스승, 이 식민사학자가 임나일본부에 관한 기록이 일본서기나 고사기에는 많이 나오는데 삼국사기를 보니까 삼국사기에는 임나일본부라는 일본판 고대총독부가 있었다 라는 그 시기에 경상도 지역에는 강력한 고대국가 신라가 있었고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는 강력한 고대 국가 백제가 있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이렇게 강력한 두 고대국가가 있는데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관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느냐. 라고 생각해가지고 임나일본부를 살릴려면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다 가짜로 몰아야되겠다. 이런 발상을 하게 되죠. 

그래서 이 쓰다 소키치(사진)라는 인물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발명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 발명품의 가장 원조,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저 뒷분들 보이세요? 

삼국사기의 특히 신라본기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상대 부분에는 소위 왜, 혹은 왜인에 관한 기사가 자못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기사는 기기(?), 고사기, 일본서기와 더불어 우리 일본인의 상대사를 천명하는데 귀중한 사료인거 같이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도대체 삼국사기 상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의 기재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동방 아시아의 역사를 연구한 현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이론이었기 때문에 왜에 관한 기록 역시 마찬가지로 사료로서는 가치가 없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시종일관 쓰다 소키치의 사고는 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는 왜, 왜인, 이 기록대로라면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최초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면서 마치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거처럼 이런식의 논리를 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국립중앙박물관, 최근까지도 가보면 원삼국실이라는게 있었어요. 원삼국실이 뭐냐? 낙동강 유역에서 칼이 하나 나왔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해보니까 A.D 2세기 때라고 나옵니다. 그럼 뭐라고 쓰면 됩니까? 신라꺼. 그럼 간단하죠?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A.D 1세기 때 금동관이 나왔어요. 뭐라고 쓰면 되요? 백제꺼 하면 간단하죠? 

그러나 이 식민사학자들 머릿속에 3세기 4세기에 백제 신라는 없었다. 있어도 조그만 부락이었다. 그러니까 신라 백제란 말을 쓰지 않기 위해서 원삼국, 이런걸 하나 발명해가지고 원삼국론이라고 써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 뭐라고 쓰고 있느냐. 백제에 관해서 여기 보시는대로 3세기 중엽 고이왕 때 중앙집권국가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B.C18년에 온조 임금이 백제를 건국했다 라고 기록했죠? 우리나라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서는 3세기 중엽 고이왕 때 백제가 건국됐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장의 뿌리가 뭐냐? 이병도씨가 나의 연구한 바로는 엄밀한 의미의 백제의 건국은 온조로부터 제 8대 되는 고이왕 때 되었다고 믿는 바이다. 고이왕 이전은 부락정치 시대에 불과했을 것이다. 라고 해서 자기의 스승 쓰다 소키치가 이야기한 삼국사기 초기 기론 불신론에 따라서 백제사 400년을 전부 다 날려버린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식민사관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데 더욱 한심한 것은 일본에서 역사 왜곡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김대중 대통령 때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수상이 합의해가지고 두 나라 주류 사학자들이 모여서 한일역사 공동연구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세금이 당연히 많이 들어갔죠. 그래서 두 학자가 동경과 서울을 번갈아가면서 연구한 결과 2005년도에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 보고서에 기막힌 구절이 너무너무 많은데 그 중에 한 부분은 시간관계상 백제에 관한 부분만 저희가 발췌를 해왔습니다. 한국 학자가 쓴 거예요. 
 
한강 유역 백제의 정세는 어떠하였을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17년조에 육자평 및 16관등제 등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로 완비했다고 나오나 이는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이 시기 백제의 발전정도는 좀더 낮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유적 분포를 살펴보면 3세기 후반에 백제의 왕성인 서울 강동구에 몽천토성과 풍락토성이 축조되었으며 3세기 후반 고이왕 때 백제가 건국되었다라고 하는 이 식민사학에도 우리는 그야말로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석주 이상용 선생이 살아 계셨으면 분신하셨을지도 모를 사건인데 거기에서 더 나가가지고 2005년도에 고이왕 때 건국했다는 것도 조작된 것이다. 백제의 발전 정도는 더 낮추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요. 그 다음 구절, 고고학을 살펴보면, 유적분포를 살펴보면 3세기 후반에 풍락토성이 축조되었으며 1997년에 풍락토성을 발굴하면서 13개의 시료를 가지고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을 했어요. 그 측정한 결과 풍락토성은 B.C2세기에 건국되기 시작해가지고 A.D2세기에 완성했다. 라는게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의 결과,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라 열세개의 시료를 가지고 방사성 동위원소로 측정한 결과 그렇게 나왔고 2000년도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건 뭐냐? 이 식민사학자들은 한마디로 학자들이 아니예요. 학자라면은 자기가 암만 부인하고 싶어도 열세개 시료를 가지고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에서 백제 풍락토성이 B.C2세기에 건국되기 시작했다라고 나왔으면은 이거를 믿지 못할거 같으면 학문밥을 놔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꾸로 이 이야기는 뭐냐? 우리 식민사학계의 교주는 이병도도 아니고 쓰다 소키치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에 보이는 개왕 이전에 백제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로서 믿기 어려운 것이고 이 식민사학자들 논법은 전부 다 모두 다 틀렸다. 총체적인. 지금도 마찬가지죠. 이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건 누가 어떤 이론을 제기하면 그 이론에 대해 조목조목 사료를 가지고 반박하는게 아니라 재야학이다, 정신병자다, 뭐다뭐다 하는 총론을 가지고 항상 비판해오죠? 왜그러냐? 자기들이 강론으로 가면 다 거짓말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이 쓰다 소키치가 개왕 이전에 백제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로서 믿기 어려운 것이고 개왕 다음에 근초고왕 때 백제가 건국했다라고 주장한 이거를 갖다가 2005년도에 한일역사 공동연구위원회에 한국측 주류식민사학자가 이병도도 우리 교주가 아니고 우리의 진정한 교주는 일제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다. 라고 자기 고백을 한 건데요. 이 내용은 지금도 동북아 역사재단 홈페이지에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이 구조로 방치해두면 안되겠다. 조선 총독부는 1945년 8월달에 해체됐지만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전혀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주류대학 국사학과, 그 다음에 국사관, 그 다음에 국사교원 양성소를 장악해가지고 주요대학 국사학과와 국사관에서 일제식민사관을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이걸 가지고 국사교원 양성소에서 가르친 결과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 한사군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됐지만 우리 역사는 지금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그대로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보니까 이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동북아 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또 하나 뉴라이트라 말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 이것이 돼 문제냐?

여러분, 이 문제는 좌우의 잣대로 바라보시면 안됩니다. 여야의 잣대로 바라봐서도 안됩니다. 이 이야기는 좌우 여야를 뛰어넘는 우리가 코리안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 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에 관한 부분이예요.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일제 식민사관의 주요한 논리 중에 하나가 정체성론입니다. 정체성론은 뭐냐? 우리 역사는, 한국 역사는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됐다. 그래서 삼국시대 때나 19세기나 똑같았다 상태가. 그래서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외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야만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병도씨가 자기 책에다가 한사군을 갖다가 대단히 극찬을 해놓는 논리가 여기에서 나오고, 21세기 백주대낮에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됐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죠.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됐는데 박정희 장군이 5.16을 일으킬 때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왜 80달라밖에 안됩니까? 일제정체성론에 따르면은 우리는 해방 이후에 지금쯤 다 굶어죽었어야 되요. 이제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발전한 것과 저 식민사관과 이제는 안맞는 겁니다. 그래서 이 구조로 이제는 해체하고 판을 새로 짤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해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할 과제, 앞으로 해야할 과제, 해방 후 우리는 일제시대에 대한 종합적 연구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별, 개별적 종합적 연구를 통해 단절할 것과 계승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우리는 식민사학만 있을 걸로 알지만 식민국어학도 있어요. 우리는 10월 9일이 무슨 날입니까? 한글날이 되면 맨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다. 자랑하기 바쁘죠? 그런데 이 한글로 알(R)과 엘(L)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지금 맞춤법 통일안으로? 알과 엘 구분 못하죠? 다 엘로 써야 되죠? P와 F 구분할 수 있어요? 다 ‘ㅍ’으로 써야 되죠? B와V 구분할 수 있습니까? 구분 못하죠? 다 ‘ㅂ’으로 써야 되죠? 그럼 세종대왕이 이런 절름발이 언어를 만들어놨느냐?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인류가 낳은 가장 탁월한 언어학자예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는 지상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그런 표음문자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우리 겨레에게 없는 발음이 있다는걸 알았어요. 그래가지고 많은 장치를 만들어놨는데 그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에 보면은 훈민정음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 해례본에 보면은 세종대왕이 다 구분을 해놨습니다. 

먼저 R과 L어떻게 구분하면 되느냐? 훈민정음 해례본에 병서의 원칙이 있습니다. 나란히 병 자. 이게 무슨 이야기냐? 초성 중성 종성 중에 초성을 자유스럽게 써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R과 L을 구분해서 말씀드리면 L레인은 그냥 레인 말하면 됩니다. 그럼 R은 제가 어느 영어 전문가를 만났더니 이분이 R을 쉽게 발음할 수 있는걸 가르쳐줬어요. 같이 한번 해보시죠. 입쪽에서 우 자를 소리 내지 말고 우 자를 한번 만들어보세요. 그리고 레인 해보세요. 레인 하는 것과 다른 발음이 나오죠? 다시 한번 해보세요. 우 자를 만들고 레인 해보세요. 다른 발음이 나오죠? 그럼 이제 R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훈민정음 해례본에 병서원칙에 따르면 L은 그냥 ‘ㄹ'로 쓰고 R은 앞에 ‘ㅇ’류를 쓰든지, ‘ㄹ’를 두 개 겹쳐서 쓰든지 니들 마음대로 써라. 라는 게 제가 말하는게 아니고 훈민정음에서 해례본에서 세종대왕이 그렇게 사용설명을 해준거예요.

그 다음에 P와 F, B와 V, 다 입술 부딪히는 순음이죠? 그래서 세종대왕이 순정음을 만든겁니다. ‘ㅍ’아래 작은 ‘ㅇ’을 쓰는 순정음. ‘ㅂ’아래 작은 ‘ㅇ’을 쓰는 ㅂ순정음. 이걸 이용하면은 모든 발음을 다 할 수 있게 세종대왕이 만들어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잘못됐느냐? 1912년에 일제가 초등학교용 언문철자표기법을 만들면서 우리 언어를 일본어 비슷하게 개학시켜놓고 거기에다가 1930년대에 세칭 두음법칙이라는 것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여러분 두음법칙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앞에 ‘ㄹ’ 발음이 나오면 ‘ㄹ’발음을 해야죠. 강제로 ‘ㄹ’발음 못하게 하고 ‘ㅇ’으로 해라. 안그러면 대학 못간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가르치는 나라는 자기 국민들 발음 못하게 국가에서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해결하려면 간단합니다. 저의 견해가 아니라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원칙에 돌아가자. 라고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이걸 하자고 그러면 우리나라는 또 국어학자들이 반대를 해요. 그러니까 일제식민사관만 있는게 아니라 일제국어학도 또 있는 겁니다. 

이런걸 한번도 우리는 이뿐만 아니라 법학, 음악, 미술, 조금 공부해보면 전부 다 일제 통치에 다 있습니다. 우리는 이걸 한번도 종합적으로 해방 이후에 67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종합적으로 연구 검토한 적이 없는데 이걸 연구 검토해가지고 일제시대라고 100% 다 나쁘진 않겠죠. 우리가 받아들일 점이 있으면 계승을 하고 버릴 점이 있으면 철저하게 버리는 작업을 해야 되는게 첫 번째구요. 

그 다음에 두 번째로는 한국사 관련 국가기구, 자기가 자기 돈 가지고 식민사학 하겠다고 그러면 그건 하라 이겁니다. 그러나 제가 낸 세금, 여러분이 낸 세금 가지고 식민사학 하려면 하지 말라 이겁니다. 일본에 가가지고 자민당 돈을 받아갖고 하라는 거예요. 

일본에 가서 일본 극우파 돈을 받고 중국에 가서 중국 패권주의의 돈을 받아가지고 중국 공산당의 돈을 받아가지고 식민사학 하라는겁니다. 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하느냐? 이제는 이 구조를 해체하고 판을 전면적으로 새로 짤 때가 됐다 라는 이야기고요. 



그 다음에 국사교과서를 주체적인 입장에서 제가 아까 드린 저 관점에서 다시 써야 된다. 그렇게 되면은 지금 대한민국은 국사 하면은 암기 과목이죠? 말이 됩니까? 국사가 암기과목인게. 국사는 암기과목일 수가 없습니다. 저희 관점으로 국사 교과서를 새로 쓰면은 학생들이 너무 재밌어가지고 국사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게 돼 있어요. (박수)

그렇게 국사 교과서를 다시 쓴 다음에 그 다음에는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모든 국가 관련 시험에서는 국사과목을 필수로 하고 그 다음에 각 기업체에는 자율적인 권고 사항으로 국사과목을 필수화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권고를 하면은 대한민국 기업인들 중에 애국자들 많습니다. 다 기본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있어요. (박수) 그러면 국가 시험과 기업 시험에 이것이 다 필수로 되면 우리 국민들의 역사인식이 획기적으로 다 바뀌리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21세기에 이 선국선열들의 그 피와 한을 이제는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21세기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인 사안이다 하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장소 : 대전 대덕구 중리동 409-1 상생방송 8층

한문화 중심채널! STB 상생방송 상담전화 : 노성현PD

 

◈ 휴대폰 :  010-4125-0789

◈ 사무실 : 042-337-1428

 

상생방송 시청자를 위해서 무료 안내 책자를 발송해 드리고 있습니다.

신청은 상생방송에 관심이 있고, 진리에 목말라 하신다면 누구나 가능합니다.